시간이 태어나기 전, 그곳엔 어둠조차 어둠이라 불릴 수 없었다.
새벽 세 시, 잠들지 못한 밤이면 나는 종종 창밖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들은 이미 죽고 사라진 빛을 지금 이 순간 내 눈동자 속으로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낯설게 느낍니다. 그 빛이 나에게 도착하기까지 걸린 몇만 년의 시간 동안,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 방도, 이 창문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 오래된 빛은 정확히 내 눈 속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빅뱅은 우주의 시작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 자체의 탄생이라고요. 그러니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는 질문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애초에 물어질 수 없는 질문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없던 자리에는 '이전'이라는 말조차 세울 수가 없으니까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풀리지 않아서 아픈 질문만 있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물음의 형태를 갖출 수 없는 질문들도 있다는 것을요.
"그 사람은 왜 나를 떠났을까." "그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일어났을까." 오랫동안 나는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 헤맸습니다. 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내가 아직 답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은 애초에 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일어난 일입니다. 시간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고 묻는 것처럼, 답이 없는 게 아니라 물음이 성립하지 않는 자리도 있다는 걸, 나는 아주 늦게서야 배웠습니다.
우주는 138억 년 전, 아주 작은 한 점에서 폭발하듯 팽창하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팽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팽창하는 우주 안에서,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시간의 한 조각을 살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나는 138억 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의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지점입니다. 무의미해 보이는 오후의 햇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던 오 분, 설거지를 하다 문득 바라본 창밖의 풍경까지도, 결국 그 거대한 시간의 강물 한 자락이었습니다.
그 강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이 흐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실 창가에 앉아 저녁 하늘을 보고 계셨습니다. "저 하늘은 내가 없어도 저기 있겠지."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때는 서글픈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건 받아들임의 언어였습니다.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될 세상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지속됨에 자신을 조용히 포개어 놓는 마음. 시간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기에, 우리는 그저 그 흐름을 잠시 빌려 쓰다 돌려주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빅뱅 이전을 묻는 질문이 무의미하듯, 어쩌면 우리 삶에도 물을 수 없는 자리들이 있습니다. 그 자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그 침묵 앞에 가만히 앉아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답 없는 질문을 붙들고 밤새 뒤척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어떤 밤은 풀리지 않은 채로 다음 아침을 맞이해도 괜찮다는 것을요. 태양이 뜨는 이유를 다 알지 못한 채로도, 아침은 매일 정확히 도착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작은 빅뱅을 하나씩 품고 살아갑니다. 삶이 완전히 달라진 어떤 순간,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하나의 점. 그리고 그 점 이전의 시간을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어떤 답은 애초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건 슬픈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한 일입니다. 없는 답을 찾아 자신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당신의 삶에도, 물음이 아니라 그저 고요히 받아들여야 할 침묵의 자리가 있나요.
오늘 밤, 당신은 그 침묵 곁에 얼마나 다정하게 머물러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