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내려놓고 나서야 보인 계절

흙에서 온 것은, 결국
흙의 시간표를 따라 돌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을 통틀어 학생 수가 백 명이 채 안 되던 작은 학교, 창문을 열면 바로 논이 펼쳐지고,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 대신 밭두렁을 뛰어다니던 그런 곳이었다. 계절은 냄새로 먼저 왔다. 봄이면 갓 갈아엎은 흙냄새가, 가을이면 마당에 널어놓은 곶감과 벼 익는 냄새가 창틈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제법 성적이 좋은 아이였다. 선생님은 종종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나가서 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른 채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나는 그 마을을 떠났다. 처음 보는 높은 건물들과 꺼지지 않는 불빛들 사이로, 나는 도시로 흘러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IT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밤새 켜져 있는 모니터, 손가락 끝에서 쏟아지는 코드, 어제 배운 언어가 오늘 낡아버리는 세계.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믿었다.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나오면 밤을 새워 익혔고, 트렌드가 바뀌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배웠다. 그렇게 몇 해를 살았다. 시골에서 온 나는, 도시의 속도에 맞춰 스스로를 계속 갈아 끼우고 있었다.

저녁 햇살이 낮게 내려앉은 흙길 위로, 유년의 온기가 스며드는 고요한 풍경

해가 기울던 논둑길, 그때는 그 평범한 저녁이 얼마나 온전한 시간인지 몰랐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싸주시던 노란 양은 도시락, 버스가 오기까지 신작로 끝에서 흔들던 손, 그리고 별이 유난히 크게 보이던 밤의 마당.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한 저녁들이 얼마나 온전한 시간이었는지를.

도시에서의 시간은 화면의 밝기로 기억된다. 새벽 세 시, 모니터의 푸른빛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창밖을 보았다. 언제 계절이 바뀌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벚꽃이 피었다가 졌다는 것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가 떨어졌다는 것을, 나는 뉴스나 SNS의 사진으로 뒤늦게 알아차렸다. 기술을 따라가느라 나는 계절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모니터 불빛 아래 홀로 깨어있는, 도시의 푸르고 서늘한 밤

밤이 깊을수록 선명해지는 화면, 그리고 점점 흐려지던 계절의 감각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저녁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기술은 끝이 없다는 것. 어떤 언어를 익히고 어떤 도구에 통달해도, 그다음 주면 또 새로운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 나는 그 무한한 흐름을 온 힘을 다해 따라가고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은 유한했다. 잠을 자야 했고, 몸이 아팠고, 언젠가는 늙어갈 것이었다. 무한한 것을 유한한 몸으로 좇는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그날 밤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함께 온 또 하나의 생각. 기술이라는 것도 결국은 도구였을 뿐이라는 것. 사람을 더 편하게, 더 행복하게, 더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도구를 좇느라 도구가 섬겨야 할 사람, 바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흙의 시간으로

지금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보려 한다. 여전히 도시에 살고,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이제는 창밖의 하늘빛이 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커피 한 잔이 식어가는 온도를 느끼려 하고, 걷는 길 위에서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알아차리려 한다. 나는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이고, 언젠가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을 산길을 홀로 걷는 뒷모습, 자연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발걸음의 여운

서두르지 않고 걷는 산길, 발밑의 흙이 오래전 그 마을의 흙과 닮아 있었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되묻는다. 오늘 하루, 나는 무언가를 따라가느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는 않았는가. 정답은 없다. 다만 저녁 밥상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창밖 어둠이 내려앉는 속도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기술은 계속해서 더 빠르고, 더 새롭고, 더 무한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유한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 사실이 이제는 슬프지 않다. 오히려 다행스럽다. 유한하기에 오늘이라는 시간이 소중하고, 지금 마시는 차 한 잔의 온도가 특별한 것이니까.

당신은 오늘, 무한한 것을 좇느라
유한한 오늘을 얼마나 흘려보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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