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라고 말한 그 밤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그 문장을 만난 건, 낡은 책의 접힌 모서리에서였어.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읽고, 무언가를 견디며 접어둔 자리.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이상하지. 반항이라는 뾰족한 단어 뒤에 '우리'가 온다는 게. 나는 늘 반항이란 혼자 남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등을 돌리고, 문을 닫고, 홀로 어두운 복도에 서 있는 일.
그런데 카뮈는 반대로 말하더라. 무언가에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 아닌 누군가와 이어진다고. 견딜 수 없는 것 앞에서 "이건 아니야"라고 중얼거릴 때, 나는 나 하나만을 위해 그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 말속엔 이미, 나처럼 그것을 견디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얼굴이 담겨 있으니까.
나는 오래 참는 사람이었어.
부당한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이 긁히는 순간에도 웃었지.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어느 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처음 "아니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무너지지 않았어. 오히려,
비로소 나로 서 있는 느낌이 들었어.
반항이라고 하면 우린 자꾸 거창한 걸 떠올려. 광장을 메운 함성, 깃발, 부서지는 벽 같은 것들. 하지만 내가 아는 반항은 훨씬 조용해.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시에 가방을 챙기는 손. 모두가 웃어넘기는 무례한 농담에 웃지 않기로 한 표정.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에 "왜?"라고 처음 물어보는 떨리는 입술. 그런 작고 사소한 거절들이, 사실은 세상을 아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던 거야.
누군가 먼저 접어둔 페이지에, 나는 내 마음을 겹쳐 얹었다.
그리고 신기한 건, 그 조용한 거절의 순간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야. 정시에 퇴근하는 내 뒤로, 눈치를 보던 후배가 조심스레 따라 일어섰고. 웃지 않은 내 표정을 보고, 옆자리 동료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어. 내가 "이건 아니에요"라고 말했을 때, 사실은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자라 있던 같은 문장을 내가 대신 소리 내어 준 것뿐이었어.
그래서 '나는 반항한다'가 '우리는 존재한다'로 이어지는 거겠지. 내가 지키려 한 건 결국 나 하나의 자존심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어떤 선. 나에게 소중한 그 선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소중한 거였으니까. 반항은 나를 세상에서 떼어내는 게 아니라, 나를 세상 사람들과 같은 편에 세우는 일이었어.
사실은 우리가 같은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일지도 몰라.
아니라고 말한 뒤에야, 옆에서 걷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요즘의 나는 참는 법보다 거절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어. 여전히 손끝이 떨리고, 말하고 난 뒤엔 밤새 뒤척이기도 해. 하지만 그 떨림이 부끄럽지는 않아. 그건 내 안에 아직 죽지 않은 무언가가, 아직 나에게 소중한 것이 남아 있다는 신호니까. 무감각해지는 것보다, 여전히 아플 줄 아는 편이 훨씬 사람다운 거라고 이제는 생각해.
그러니 혹시 오늘, 삼켜야 했던 말 때문에 마음 한쪽이 뻐근한 사람이 있다면. 그 뻐근함을 너무 미워하지는 마. 그건 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고, 어딘가에서 같은 뻐근함을 안고 견디는 사람과 네가 조용히 이어져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문장을 접어두고 있는 거야.
당신이 오늘 차마 하지 못하고 삼킨 그 한마디는,
사실 몇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