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밤은 흐르라 속삭이고,
또 어떤 밤은 거슬러 헤엄치라 부른다.
새벽 두 시. 잠은 멀리 달아나고, 천장의 어둠만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런 밤이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다 정해져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걸까. 두 질문은 정반대였는데, 이상하게도 둘 다 나를 조금씩 울게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속에 두 개의 목소리를 데리고 살게 되었다. 하나는 아주 오래된 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젊고 떨리는 목소리다. 둘은 자주 다투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사람을 위로하고 있었다.
대답 없는 질문을 품고도, 우리는 다시 아침을 맞이한다.
먼저 찾아온 건 오래된 목소리였다. 그건 마치 비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낡은 등대 같았다. 그 목소리는 말했다. 네가 어쩌지 못하는 일에 마음을 쏟지 말라고. 떠난 사람의 마음, 내일의 날씨, 어제 했어야 할 말, 타인의 시선. 그런 것들은 애초에 네 손바닥 위에 있던 적이 없었다고.
대신 손 안에 쥐어진 것들을 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낼지, 그것만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비가 오면 비를 탓하는 대신 우산을 펴는 마음, 그게 전부라고.
일어난 일이 너를 아프게 한 게 아니야. 그 일을 두고 네가 내린 판단이 너를 아프게 한 거지. 그러니 세상을 바꾸려 애쓰기 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네 눈빛부터 데워보렴.
그 목소리는 운명을 미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미워하기는커녕, 차라리 사랑하라고. 이미 흘러온 강물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면, 그 물결의 결을 따라 손끝을 적셔보는 편이 낫다고. 받아들임은 패배가 아니라, 가장 단단한 종류의 평화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오래 기댔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발버둥치느라 닳아버린 마음에게, 그건 따뜻한 담요 같은 위로였다.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면, 차라리 그 결을 사랑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떤 밤에는, 그 담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말이, 가끔은 내 안의 불씨를 꺼버리는 것 같았으니까. 그때 두 번째 목소리가 찾아왔다.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떨리고, 그래서 더 솔직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정반대를 말했다. 이 우주에 너를 위해 미리 마련된 자리 같은 건 없다고. 너는 그냥 어느 날 이 세계에 툭 던져진 거라고. 누가 정해준 의미도, 사용설명서도 없이. 그래서 무섭지만, 바로 그래서 자유롭다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끔찍한 동시에 눈부신 일이야. 네 삶의 의미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서 찾아내는 게 아니라, 네 두 손으로 직접 빚어내는 거란 뜻이니까.
그 목소리는 내 안의 불안마저 끌어안으라고 했다. 불안은 길을 잘못 든 증거가 아니라, 내가 정말로 자유롭다는 증거라고. 선택지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다고. 갈림길 앞에 선 사람만이 가슴이 뛴다고.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고도 했다. 슬프면 충분히 슬퍼하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 열망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평정심도 좋지만, 때로는 뜨겁게 흔들리는 그 마음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라고.
정해진 길이 없다는 건,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된 목소리는 받아들이라 하고, 젊은 목소리는 창조하라 한다. 하나는 흐름에 순응하라 하고, 다른 하나는 네가 흐름을 만들라 한다. 처음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옳은지를 가려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둘 다 옳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둘은 사실 한 사람의 양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는 첫 번째 목소리에 기대어 고요해지고, 바꿀 수 있는 것 앞에서는 두 번째 목소리를 따라 용감해지면 되는 거였다. 비가 오는 건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비를 맞으며 어떤 노래를 흥얼거릴지는 오롯이 내가 정하는 것처럼. 던져진 건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던져진 이후의 모든 걸음은 내 선택인 것처럼.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받아들이는 동시에 만들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운명을 사랑하면서도, 그 운명 위에 나만의 무늬를 새기는. 한 손으로는 세상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의 길을 그리는.
그 새벽, 천장의 어둠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둠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텅 빈 공백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은 다정한 종이처럼.
당신의 두 손은 지금,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빚어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