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가 깊은 강일수록,
더 오래, 더 멀리 흐른다고 합니다.
움푹 패인 자리마다 물이 고이고, 그 물이 모여 결국 강이 되더군요.
살다 보면 그런 시기가 있어요. 분명 어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발밑이 자꾸만 아래로 꺼지는 것 같은 날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어느새 바닥에 가까운 어딘가에 서 있고, 고개를 들면 내가 지나온 자리가 까마득해 보이는 그런 날들이요.
나는 오래도록 그 내리막을 부끄러워했어요. 남들은 다 평평한 길을 잘만 걷는 것 같은데, 왜 내 길에만 이렇게 굴곡이 많을까. 왜 나는 자꾸 넘어지고, 돌아가고, 멈춰 서야만 할까. 그 시절의 나에게 굴곡은 그저 흠집이었고, 어떻게든 메우고 감춰야 할 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어요. 내가 가장 깊이 가라앉았던 그 겨울에, 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침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일이 어떤 위로인지를, 그때 비로소 몸으로 배웠다는 것을요.
평탄한 길은 빠르고 편안하지만, 그 위에서는 좀처럼 마음의 결이 깊어지지 않더라고요. 발이 아프지 않으니 누군가의 절뚝거림을 몰랐고, 비를 맞아본 적이 없으니 비 맞은 이에게 우산을 내미는 법도 몰랐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웠던 때의 나는, 솔직히 조금 얕았던 것 같아요.
비를 맞아본 사람만이, 누군가의 젖은 어깨를 알아봅니다.
내려가 본 사람만이 아는 풍경이 있어요. 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보다 훨씬 넓고 다정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작아진 게 아니라, 그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오래 바라본 것뿐이었어요.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사실은 가장 멀리까지 보이는 자리였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강도라는 건, 단단하게 굳어 부러지지 않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휘어질 줄 아는 것. 꺾일 듯 흔들리면서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굴곡을 겪은 마음은 쇠처럼 딱딱해지는 게 아니라, 오래 끓인 국물처럼 깊고 진해지는 것이더군요.
가끔 손에 든 찻잔의 온기를 가만히 느낄 때가 있어요. 그 따뜻함은 차가운 손이 있어야만 비로소 또렷해지는 온기예요. 내내 따뜻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 온도를 영영 몰랐을 거예요. 시린 날들이 있었기에, 작은 따뜻함 하나가 이토록 귀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당신이 견뎌온 그 모든 날들. 이불 속에서 소리 없이 울었던 밤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출근하던 아침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긴 터널의 시간도. 하나도 헛되지 않았어요. 그 날들이 지금의 당신을, 이만큼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울퉁불퉁한 그 길 끝에, 오직 나만의 빛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 길의 굴곡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그 패인 자리마다 물이 고였고, 그 물이 모여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강이 되었으니까요. 평탄하게 다듬어진 길보다, 울퉁불퉁하지만 나만의 풍경을 품은 이 길이 이제는 조금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당신이 가장 깊이 가라앉았던 그날,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풍경이 새로 고이고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