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끝을 묻지 않고 흐른다.
그저 흐르는 동안, 조용히 깊어질 뿐이다.
밤이 깊어지면 자꾸 마음이 길어집니다. 낮 동안 미뤄두었던 질문들이 그제야 제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줄을 서요.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때 그 선택은 옳았을까,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떠났을까.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고 있으면, 답이 없는 물음들이 베개 옆으로 자꾸만 굴러옵니다.
한동안 저는 그 모든 질문에 답을 내야만 잠들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이유를 알면 마음이 정리될 거라고, 정리되면 비로소 편안해질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밤마다 머릿속으로 지난 일을 되감고, 또 되감았어요. 마치 흐려진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면 선명해지기라도 할 것처럼요.
잠들지 못하는 밤은, 대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길어집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이었어요.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밤새 어떤 답도 찾지 못했는데, 아침은 또 어김없이 오고 있다는 것. 답을 찾은 나를 기다려주지도, 답을 못 찾은 나를 탓하지도 않으면서, 하루는 그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어요.
그게 어쩐지 위로가 됐어요. 세상이 나에게 모든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요. 강물이 바다의 위치를 알아서 흐르는 게 아니듯, 나도 인생의 정답을 손에 쥐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나를 키운 건 명쾌한 정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답을 모른 채로 묵묵히 견뎌낸 시간들, 그 어정쩡하고 막막했던 계절들이 어느새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모르는 채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떤 질문은 평생 답하지 못한 채 데리고 살아도 되더라고요. 그 사람이 왜 변했는지, 그 길이 왜 막혔는지, 끝내 이유를 모른 채 지나 보내도 하루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답을 강요하지 않으니 마음에 작은 여백이 생겼어요. 그 빈자리로 바람이 드나들고, 햇살이 머물다 가더라고요.
끝이 보이지 않아도, 발밑의 한 걸음은 늘 그 자리에 있어요.
우리는 자꾸 완성된 나를 미래 어딘가에 세워두곤 해요. 더 안정되고, 더 정리되고, 더 멋진 나. 그곳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행복할 자격이 생긴다고 믿으면서요. 그런데 막상 그 자격은 영영 오지 않더라고요.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능선이 저만치 그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마음을 조금 다르게 먹어요. 미완성인 채로도, 불완전한 채로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그냥 곁에 두기로요. 마치 한창 자라는 중인 화분처럼요. 매일 보면 자라는 게 보이지 않지만, 어느 아침 문득 새 잎이 돋아 있는 걸 발견하잖아요. 성장은 늘 그렇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흐름 속에서 조용히 일어나더라고요.
오늘 하루도 그래요. 별다른 답을 찾지 못했어도, 대단한 걸 이루지 못했어도, 그저 하루를 살아낸 것만으로 우리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요. 식어가는 차 한 잔을 마시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건네고, 무사히 밤을 맞이한 것.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뼘씩 자라고 있는 거예요.
자라는 줄도 모르는 사이, 마음은 분명 깊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오늘 밤, 또다시 답 없는 질문들이 줄지어 찾아온다면, 이번엔 그것들을 굳이 풀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가만히 곁에 두세요. 모르는 채로, 불완전한 채로 잠들어도 아침은 또 올 테니까요. 그리고 그 사이에도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고 있을 테니까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그 질문 하나,
오늘 밤엔 그저 흐르도록 놓아둘 수 있을까요?